문화유산

파고다공원(탑골공원)

여정의 길 2016. 8. 22. 15:34


3.1운동 현장을 가다. 탑골공원 탐방기



살다가


기미년 3월 1일 아침, 병탄 이전 황실공원이었던 파고다공원에 수천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정오가 되자 한 학생이 팔각정 위에 올라섰다. 이 학생이 발을 딛고 올라선 팔각정은

그해 급서한 고종의 즉위 40년을 기념하기위해 1902년 군악대의 연주장소로 지어진 정자였다. 그는

수많은  학생들과 조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종이를 한 장 꺼낸다.

그리고 모두의 앞에서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독립 선언서 였다"


1876년, 강화도에서 수호 조약을 맺은 뒤로, 여러 차례에 걸쳐 맺은 가지가지의 굳은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벌하려고는 아니한다. 일본의 학자는 강단에서, 그들 정치가는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온 신의 없음을 벌하려고는 아니한다. 일본의 학자는 강단에서, 그들 정치가는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온 빛나는 업적(자랑스러운 이 나라)을 식민지로 여기고, 우리문화 민족을 무지 몽매한 야만인으로 대우하여, 다만 정복자로서의 쾌감을 욕심낼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적 바탕과 뛰어난 민족 정신을 업신여긴다 하여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고도 아니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급한 우리는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겨를이 없다. 지금의 처지를 고치고 수습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잘못을 들추어 응징할 겨를이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나라를 건설하는 것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때의 감정에 따라 남을 시기하여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다. 침략주의라는 낡은 사상과 군벌의 묵은 세력에 얽매인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이 되어 버린, 불합리하고 또 부자연스러운 그릇된 상태를 크게 바로잡아 고쳐서, 일본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고도 합리적이며 올바르고 떳떳한 큰 원칙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처음부터 민족의 요구에서 나오지 않은 두 나라 합방의 결과가 마침내, 힘으로 억누르려는 임시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통계 숫자로 거짓 꾸민 상태에서, 이익과 손해가 서로 다른 두 민족이 영원히 화목하게 살아갈 수 없는 원한의 구렁텅이를 날이 갈수록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제 모습을 보라. 날래고 밝은 결단력으로써 묵은 잘못을 바로잡고, 참되고 바른 이해와 동정에 바탕을 둔 우호적인 새 국면을 여는 것이 서로가 불행을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임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일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힘과 아울러 일본으로 하여금 침략자의 그릇된 길에서 나와, 동양을 떠받치는 자로서의 중요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자나 깨나 떨어 버리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과정이 되게 하는 것이니, 이 어찌 잘고 용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는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학생인 정재용은 잠시 숨을 삼킨다. 파고다 공원에 발 디딜 틈 없이 서 있는 수천의 학생들 앞에 드디어 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장을 읽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에 힘차게 떨치고 일어났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 노소 없이 누구나 어둡고 답답한 일본의 억압 상태에서 활발히 일어나 나와서, 삼라만상과 함께 즐겁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게 되었다. 먼 조상들의 혼령이 우리를 가만히 도우며, 밖으로 온 세계의 형세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다.”
정재용은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독립선언서를 낭독을 마치고 두 팔을 들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학생들은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다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과 함께 대한문(大漢門)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참고자료



100년전 일어난 대한민국 독립을 향한 첫 신호를 알린 3월 1일 독립선언문은 "기미독립선언서"라는 이름으로
전국 방방곡곡 2천만 동포에게 울려퍼졌고, 이 일을 계기로 임시정부의 설립의 필요성이 중론으로 모아져 임시정부탄생의
발판이 됩니다.
 
이런 역사적인 숨결이 살아 숨쉬는 탑골공원 지금 부터 탑골 공원을 함께 산책 해 보지요


팔각정 이곳이 바로 삼일운동(기미년3월1일)의 첫 울림을 포효한 자리 입니다.


많은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어 온지 오래되어 버린...탑골 공원...

어르신들은 위로를 받으로 오시는걸까?

답답함에 찾아 오시는걸까?

선조들을 위로하고 우리 잘살고있다고 보여주기위해오시는걸까?

많은 생각이 교차 되면서 짦은 시간이였지만 생각하게 되는군요

여러분은 이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개개인이 다르게 느끼겠지요?

매일같이 느낄수는 없지만 흔적을 찾아 오게되면,

문화의 위대함이란 8월 무더운 여름날 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차디찬 계곡물에 몸

담그는것 처럼 쨍! 하고 내 안의 자아가 다시 태어나는걸 느낄수 있는 시간...

여러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때 무심코 처다본 그곳에 엄청난 위용을 뽐내듯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내가 바로 국보니라 

엄청난 포스를 뽐내며 자태를 내보이고있는 국보2호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앗 제 모습이 비쳐보이네요 부끄...



높이가 어마어마 합니다. 그리고 안에 자세히 들여다보면.정교한 조각술...

탑에 새겨진 조각은 한참을 보게 만드네요.


원각사십층석탑의 내용

높이 12m. 국보 제2호. 이 석탑은 전체를 대리석으로 건조하였는데, 형태가 특수하고, 의장(意匠)이 풍부하여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례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최우수작이라 하겠다.
현재 10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고 그 위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는데, 상부의 3층 옥개석(屋蓋石)이 오랫동안 지상에 방치되었던 것을 1947년 원상태로 복원한 점으로 보아 상륜부재가 없어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기단부는 3층으로 구성되었는데, 건축기단으로서 면석과 갑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평면은 亞자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층마다 각 면석에는 여러 가지 조각으로 화사하게 장식되었는데, 초층에는 각 면에 용(龍), 혹은 사자(獅子)와 모란(牡丹)·연화문(蓮華文)이 조식되고, 2층에는 각종의 인물·조수(鳥獸)·초목·궁전을 표현하였으며, 3층에는 많은 나한과 선인들을 조각하였다.
각 층의 갑석은 하면에 웅건한 당초문이 조식되고, 측면은 굽을 돌출시켜 갑석형(甲石形)을 이루었다. 그리고 상층기단 갑석 상단에는 난간을 장식하여 그 위에 탑신부를 받도록 하여 주목되고 있다.
탑신부는 초층부터 3층까지 평면이 기단과 같이 亞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4층부터는 방형(方形)으로서 이 윗부분은 일반형 석탑의 탑신과 그 형태가 같다. 각 층의 옥신에는 하단부에 굄대를 높직하게 마련하고 측면에는 난간을 모각하였다.
각 면 중앙에 12회(十二會)의 불(佛)·보살(菩薩)·천인상(天人像) 등을 조각하였으며, 네 귀퉁이에는 원형의 석주를 모각하였다. 옥개석은 층마다 팔작지붕을 하였고, 하면에 두공(枓栱)을 모각하였는데, 지붕의 기왓골 등 모두 목조건축의 옥개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특히, 2층 정면의 지붕은 전각지붕과도 같고, 더욱이 3층은 이중의 지붕모양으로 조성되어서 그 의장과 기교가 놀랍다. 이 석탑은 전면에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 석재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서 한층 더 우아한 맛이 있다.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의 구조, 그리고 표면 전면에 장식된 불상의 조각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십층석탑(敬天寺十層石塔, 국보 제86호)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사용된 석재가 대리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석탑의 소속 사원(寺院)이었던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창건되었으며, 따라서 이 석탑도 사찰 창건 당시의 건조물로 추정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보다 앞서서 건립되었다고 하나, 이것은 이 석탑이 전대인 고려시대의 경천사십층석탑과 너무나 흡사한 데에서 오는 억측이다. 그 수려하고도 기교적인 면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탑파사상(塔婆史上) 손꼽히는 걸작품이라 하겠다.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圓覺寺址十層石塔]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이 밖에도 ...


대원 각사비가 있습니다.



파고다공원은 팔각정 십층석탑 대원 각사비등 문화 유적지이며, 3.1운동을


낭독하고 행진을 한 아픈 역사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항상 우리 옆에 있었고, 앞으로도 함께하겠지요.


산책 중인 시민들...


<파고다공원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공원인 사적 제 354호로 지정되어 있는 탑골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던 곳 이다.


고려시대 흥복사가 있던 자리에 1465년 (세조 11년)에 원각사라는 절이 세워졌으나 연산군 때 폐사되었고,


고종 34년에 영국인 브라운의 설계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20년'파고다 공원' 이라는 이름으로 개원 하였으나 1992년 옛 지명을 따 탑골공원으로 개칭 하였다.


탑골 공원 탐문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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