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영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약칭 조선(朝鮮) 또는 북한(北韓), 북조선(北朝鮮)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국가이며 수도는 평양직할시다.
수도는 1972년 12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 공포되며 명목상 수도 서울시에서 '혁명의 수도' 평양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남쪽으로는 대한민국과,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및 러시아와 접하고 있다.
공용어는 한국어이며, 경기 방언에 기초한 문화어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반도는 북위 38도를 경계로 이북 지역을 소련군이 맡아 군정을 실시했으며,
1946년 2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해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48년에는 조선반도 총선거에 기초하여 김일성을 수상, 박헌영·홍명희 등을 부수상으로 하여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조선로동당, 천도교청우당, 조선사회민주당이 있는 형식상의 다당제 체제이지만, 사실상 조선로동당의 1당 체제며,
특히 국가주석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 그리고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이 차례로 집권하여 김씨 왕조다.
현재 내세우는 정치이념은 주체사상과 선군정치(先軍政治·군이 앞장서는 정치)다.
주체사상은 1972년 사회주의헌법 개정에서 최초로 등장하였고, 1992년 4월 헌법 개정 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삭제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독자적인 사회주의 체계를 마련했다. 1998년 사회주의헌법 개정 때 공산주의 문구를 전부 삭제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국방위원장이 자국의 실권자임을 명시했다. 2013년 6월에는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상위 규범인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하면서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관련 내용을 완전히 삭제하고 주체사상으로 대체했으며,
김일성 가문의 '백두 혈통' 계승을 명문화했다.
표어 강성대국(强盛大國)
국가 애국가
North Korea on the globe (Japan centered).svg
수도 평양 북위 39° 2′ 동경 125° 45′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이다
평양
정치
공용어 한국어
정부 형태 단일 국가
일당제 주체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 지도자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1 김영남
내각총리 김정은 박봉주
역사
건국
• 독립 일본 제국으로부터 독립
• 광복 1945년 8월 15일
• 북조선인민위원회 1946년 2월 8일
•정부수립 1948년 9월 9일
•주체사상 제정 1972년 12월 27일
지리
면적 123,138km² (96 위)
내수면 비율 0.1%
시간대 PYT (UTC+8:30)
DST 없음
인구
2016년 조사 25,281,000명 (50위)
인구 밀도 190명/km² (55위)
경제
GDP(PPP) 2014년 어림값
• 전체 $503억 (94위)
• 일인당 $2,400 (155위)
명목 $1,320[1] (154위)
통화 원
전도 사용 (KPW)
기타
ISO 3166-1 408, KP, PRK
도메인 .kp
국제 전화 +850
헌법상 국가 원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으로 조선이라고 약칭하기도 하나,
고조선이나 조선왕조 등과의 구분을 위해서, 또는 일본 같은 외국에서 부르는 명칭으로서 대한민국과 대비하여
'한반도의 북부에 있는 조선'의 의미로 북조선(北朝鮮)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북한(北韓)이라고 부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은 이 호칭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한제국
근대 한국을 가르는 기준으로는 1862년 고종의 즉위식을 시작으로 구분되지만,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등 여러 이견이 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1919년 3.1운동에 따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현재 대한민국의 기원으로 본다.
일제 강점기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경술국치를 맞아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조선의 38선 이북 지역은 소련군, 38선 이남 지역은 미군이 각각 점령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해 군정통치했다.
이때 조만식을 중추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평남건국준비위원회(平南建準委)를 세우자 평안남북도(平安南北道)가 그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적화(赤化)의 거점이 되었다.
1945년 10월 한반도 북부에서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세워지고나서 이북5도행정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성립되어 이 위원회의 이름으로 농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실제 경작민에게 배분하는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그 뒤 인민위원회가 설치되고 이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신민당이 연합하여 북조선로동당을 만들고,
이후 남조선노동당과 합당해 조선노동당이 된다. 이후 북조선인민회의와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9월 9일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상에 취임했다.
한국전쟁
건국 이래 38도선 부근에 걸쳐 국지전이 빈번하였다. 특히 조선인민군은 대한민국 관할하에 있던
옹진반도, 개성, 의정부, 춘천 그리고 강릉 등의 접경지역을 주 공격 목표로 삼았다. 김일성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남침을 48번이나 건의했고 스탈린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를 거절했다. 결국, 미군이 철수한 시점에
김일성은 스탈린의 남침 승인을 받아내고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적 지원을 등에 업고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에 대대적인 기습 남침을 감행했다.
전쟁 초기 기습으로 인해 패전을 거듭한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군은 3일 안에 수도 서울을 점령당하는 등
정부 주요인사들은 대전, 대구,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조선인민군이 낙동강 부근까지 진출했다.
국제연합군 파병과 더글라스 맥아더의 인천 상륙 작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측이 반격을 시작해 9월 27일에 서울을 점령하고,
10월 1일에는 38도선까지 점령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임무를 완수한 국제연합군은 철수할 것을 검토했으나,
이승만의 주도로 응징론이 대두되면서, 국제연합군은 새로운 총회 결의를 바탕으로 거듭해서 10월 26일에는 압록강 부근까지
진출하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과 소련의 지원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멸망의 위기를 극복하였고
전쟁은 국제전의 양상을 띠며 38도선 부근에서 장기화되었다. 이후 교착을 거듭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설정된 군사 분계선을 경계로 오늘날까지 휴전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은 그 밖에도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 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 가족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반도 내에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으로 인해 양측 간의 적대감이 극도로 팽배하게 되어 한반도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독재의 시작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구조는 초기에 남로당 계열, 갑산파 계열, 소련파 계열,
연안파 계열 등으로 이루어진 연립내각 체제였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은 당시 정적들이였던 박헌영, 리승엽 등 남로당 간부들을 대거 숙청했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의 지반은 계속 확대되었다. 1956년 8월에는 최창익 등 연안파 세력들이 지도자 위치에 있던 김일성을 끌어내리려던 시도
(8월 종파 사건)를 했지만, 무산되면서 얼마 후
주동세력인 소련파와 연안파는 숙청되었다.
이로 인해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어서 김일성은 갑산파계열내에 온건세력들을 숙청함으로써, 정치구도는
김일성 유일 체제가 확립되었다.
1972년 12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은 1977년 개정되어
국가의 공식이념을 주체사상으로 확립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자주적인 공산주의 국가"로 규정해 혁명의 단계가
인민민주주의 혁명 단계에서 공산주의 혁명단계로 넘어왔음을 명확히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部, 수도)는 서울시다"라는 내용에서 '서울'을 '혁명의 수도'인 '평양'으로 바꾸었다..
조선로동당의 우월적 지위 명시
공산주의적 소유제도의 확립
주체사상의 헌법 규범화
국가주석제 도입 및 권한 강화
집단주의 강조(조직적체계)
이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권력을 국가원수인 주석에게 몰아준 것이었다. 즉 내각수상을 주석으로 그 이름을 바꾸고,
주석에 직속된 중앙인민위원회에 행정, 입법, 사법의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같은해 대한민국에서 10월 유신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는데,
사회주의헌법은 수령 유일체제의 법제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본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수령이라는 직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할 당시부터 수령으로 호칭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수령이 점차 신격화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 제국의 천황과 흡사하게,
종교적·신화적인 요소를 수령제도에 가미했던 것이다. 이러한 수령의 영도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수령 유일체제로서, 수령인 김일성을 중심으로 전체 사회를 일원적으로 편제했다.
수령은 위대한 사상과 탁월한 영도력, 그리고 지고의 인격을 지닌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수령의 교시는 무조건
복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헌법의 요지다. 이후 김일성의 사상은 주체사상으로 명명되었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유일체제를 옹호하는 이론으로 변모해 갔다.
김일성은 1994년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김영삼과 만나 대담하기로 약속했으나,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결국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은 이때에 성취되지 못하였다.
김정일 정권
198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0년대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로 유훈통치가 강화되어갔다. 1991년에는 대한민국과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여 김정일(金正日)이 사실상의 지도자가 되었다. 헌법 개정을 한번 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김정일의 유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1994년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한다고 했을 때 전쟁 위기가 최고조였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민군은 미군과 맞설 수 있는 전쟁수행능력이 없었고 비축물자도 없었다. 전투의욕도 상실한 상태였다. 2000년 6월 13일 김정일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대중과 만나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이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같은 남북 협력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발생했다. 한편 2003년에 출범한 참여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2006년 7월 미사일 시험발사가 있었으며 10월 13일 핵 실험을 실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직할시에서 만나 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한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 수립된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 관계는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대한민국 국적의 금강산 관광객이 관광 도중 살해되었고, 결국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에도 불구하고 2009년 4월에는 이른바 광명성 2호를 발사하였고, 5월에는 핵실험을 강행했다. 또한 2010년 3월 2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천안함 침몰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연이어 11월에는 휴전협정 이후 최초의 영토 도발인 연평도 포격을 감행하여 남북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김정은 정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면서 사실상 김정은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4개월 뒤인 2012년 4월 13일,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장직을 폐지하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정은 체제를 공식 출범했다. 이로써 근ㆍ현대사상 최초로 공화정 지도자의 3대 권력세습이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같은날 광명성 3호을 발사했으나 기술적 문제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2012년 7월 18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회의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인 김정은에게 기존 대장 계급에서 2단계 높은 원수 칭호를 부여할 것을 결정했다. 원수 칭호는 이미 사망한 김일성·김정일에게만 부여된 대원수의 바로 아래 계급으로, 이전까지는 리을설이 유일했었다. 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차수는 보직 해임된 리영호를 포함하여 현재 총 8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월 12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은하 3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로켓에 문제가 있어 정비를 위해 분해하는 것으로 위장했다가 기습적으로 발사하여 은하 3호에 적재된 위성을 위성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위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사실상 우주미아 상태에 있으며, 로켓 발사로 인해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규탄을 받았다.
2013년 2월 12일에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리히터 규모 4.9 (미국 지질조사국은 리히터 규모 5.1)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 사건으로 현재 많은 나라의 규탄을 받고있다.
동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태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절을 선언했다.[8] 이에 대한민국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국을 공격한다면 인류의 의지, 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했다.[8] 국방부 또한 조선인민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8]
4월 26일, 대한민국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내의 잔류인원에 대한 철수를 결정했다.[9] 이에 따라 27일,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126명이 철수했고, 29일에 나머지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10] 그러나 남은 잔류인원 50명 중 43명만 귀환 허가를 받았다
(물론 나머지 7명도 훗날 귀환했다.).
12월 3일, 김정은은 정권 내 제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에게 정치적 숙청을 단행해 축출했다. 이어 12일, 사형을 선고하고 즉결 집행으로 장성택을 제거했다. 그러나 고모 김경희에 대한 처분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3대 세습에 폐륜아 김정은
위치와 면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쪽 경계는 1948년 9월 9일부터 1950년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38선(북위 38˚선)이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로는 군사분계선이다. 북으로는 대략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중화인민공화국 및 러시아와 인접한다. 국토 북단은 북위 43˚ 00' 36˝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 남단은 북위 37˚ 41' 00˝ 황해남도 강령군 등암리, 서단은 동경 124˚ 18' 41˝ 평안북도 신도군 비단섬, 동단은 동경 130˚ 41' 32˝ 라선특별시 우암리이다. 면적은 123,138 km²로, 한반도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대한민국 영토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주장하는 영역과 거의 같다. 이를 따르자면 영토의 남단은 북위 33˚ 6' 32˝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 동단은 동경 131˚ 52' 4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바뀌게 된다. 이 영토의 면적은 222,209.231 km²이며 한반도 본토를 제외한 섬은 5,974.655 km²이다. 섬을 포함한 남북의 최장 거리는 1,127.16 km, 동서의 최장 거리는 645.25 km이다.
지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형도
한반도는 긴 지질 시대의 거듭되는 지각운동, 침식, 퇴적작용 등에 의해, 산지, 평지, 계곡, 해안, 고원 등 변화가 많은 지형이 되었다. 국토의 약 90%를 산지가 차지하여, 육지의 평균 표고는 440m이다. 많은 국토가 산지 속에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형은 백두대간인 낭림산맥(狼林山脈)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서쪽으로 강남산맥(江南山脈), 적유령산맥(狄踰嶺山脈), 묘향산맥(妙香山脈), 언진산맥(彦眞山脈), 멸악산맥(滅惡山脈) 등이 펼쳐져 있고, 함경북도에서 함경남도에 걸쳐 함경산맥(咸鏡山脈)과 부전령산맥(赴戰嶺山脈) 등이 낭림산맥과 이어져 북부와 동부가 높고 서부와 남부로 오면서 점차 낮아진다. 이들 산맥으로부터 발원한 여러 개의 큰 강들은 서해 및 동해로 흐르고 있으며 이들 강을 중심으로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가장 큰 산맥은 북부에 위치하는 랑림산맥, 최고봉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경에 위치하는 백두산(2744m)이다.
평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실질적으로 점유하는 영토 면적의 약 5분의 1로, 서해안 연안이나 서해안에 도달하는 하천의 유역에 집중하고 있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토양이 있지만, 산지의 토양은 유기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 불모지이다.
주요 하천은 대개 산지의 수원지에서 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간다. 가장 긴 압록강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경이다. 다른 주요 하천은 대동강, 예성강, 청천강, 재령강 등이 있다. 두만강만은 동쪽으로 흘러서 동해로 간다.
중요한것은 눈으로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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