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월마 루돌프의 이야기

여정의 길 2016. 8. 23. 19:13

흑인,여성,장애


1896년 시작된 근대올림픽에서도 육상은 가장 핵심이 되는 종목이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이 최고의 순간 스피드를 내는 100m는 ‘육상의 꽃’으로 불렸다.

이 육상 단거리에서 고난과 역경을 딛고, 화려한 꽃을 피운 선수가 있다.

그녀는 흑인·여성·장애라는 세 가지 편견을 뚫고 달린 스프린터였다. 소아마비를 극복하며,

1960로마올림픽 3관왕(여자100·200·400m릴레이)에 오른 윌마 루돌프(미국·1940~1994)가 그 주인공이다.




루돌프는 1940년 미국 테네시 주에서 22남매 중 20번째로 태어났다.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볼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고작 2kg도 되지 않았다.

이후 4세 때는 폐렴과 성홍열을 앓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후유증 때문에 그녀의 왼쪽 다리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소아마비 판정이었다. 당시 의사는 “걸을 수조차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게점원 또는 도로공사 노동자 등을 전전했지만, 몸이 좋지 않았다.

가정부를 하는 어머니가 가계를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흑인 가정이 그렇듯, 가난은 당연한 굴레였다.

의료혜택을 잘 받을 수 없는 조건이 루돌프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루돌프에게는 돈 보다 더 강력한 후원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 블랜치의 헌신이었다.

어머니는 매주 버스로 45분이 걸리는 병원을 찾아, 딸이 물리치료를 받게 했다. 매일 병원에 들를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한 의사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물리치료법을 어머니에게 가르쳤다. 이후 루돌프의 언니들도 물리치료법을 배웠고,

결국 루돌프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흐른 4년의 시간…. 마침내 8세가 된 루돌프는 보조기구를 통해 걸을 수 있게 됐다.

활동량을 늘리기 위해 오빠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던 그녀는 결국 11세 때 보조화마저 벗어 던졌다.

보조화를 풀고 이리저리 뛰는 딸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루돌프는 자서전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야말로 내 사전에 불가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If you have faith, it will happen
강열하게 원하면 이룰수 있을수 있다.



흑인 가난 장애 여성 의 한계를 뛰어넘다.


중학교의 월마 루돌프


그녀는 근력향상을 위해 치료와 운동 목적으로 농구부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하루 하루 다르게 성장하는 그녀는 고등학교까지 농구가 이어지는데.

어느정도의 실력이였냐면, 고등부 시합 한 경기 최다득점고등학교 때는

한 경기 최고득점과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가볍게 경신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런 루돌프의 운동신경과 승부근성을 눈 여겨 본 지도자가 있었다.

테네시 주립대학의 육상 코치 에드워드 템플이 그 주인공. 템플은 그녀의 인생에서 어머니에 버금가는 은인이었다.

루돌프는 템플의 권유로 테네시 주가 운영하는 여자육상팀 타이거벨스에 입단한다.

린다 제이콥스가 쓴 전기 ‘영광을 향해 달린 윌마 루돌프’에는 그녀가 훈련 첫날 시골농장을 가로질러 5마일(약8km)을 쉬지 않고 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소아마비를 극복했던 경험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 속에 독기를 심었다. 하지만 육상선수로의 도전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부상을 당하거나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어린 시절 보냈던 고난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시 ‘나보다 육상을 먼저 시작한 동료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를 가지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의문은 그만 품고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며 다그쳤다. 마침내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6년 루돌프는 호주 멜버른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고, 여자400m릴레이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편도선염 수술로 한 동안 트랙을 떠났던 그녀는 1960로마올림픽을 1년 앞두고 화려하게 복귀한다.


1960년 대망의 로마 올림픽에서 날개를 달다.

로마올림픽은 그녀를 올림픽 역사에 남을 단거리 여왕으로 만든 대회였다. 100·200·400m계주에서 3관왕에 올랐다. 특히 400m계주에서는 다리 근육이 경직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투혼을 발휘했다. 올림픽 역사상 여자 선수가 한 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그녀가 사상 최초였다. 1961년 100m 여자세계기록(11초2)를 세운 루돌프는 미국의 가장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하는 설리반 상을 받았다. 1960·1961년 세계최우수여자선수도 2년 연속 그녀의 차지였다. ‘국제 여자 스포츠 명예의 전당’, ‘미국 육상경기 명예의 전당’, ‘올림픽 명예의 전당’, ‘흑인선수 명예의 전당’ 등에 이름을 올리며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루돌프는 항상 겸손하고 소박했다. 그녀의 동료인 메이 패그스 스타는 “루돌프는 너무나도 남의 말을 잘 들었다. 올림픽 3관왕이 된 뒤에도 그런 면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료들의 비판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기에 그녀는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루돌프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 나이에 성공해서 전 세계의 왕이나 여왕,

또 장관이나 교황과 자리를 같이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하루 빨리 자신의 진짜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인권운동가로 제2의 트랙을 달리다.


실제로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한 순회 경기도 하지 않았고, 아마추어로만 활약하다 22세에 트랙을 떠났다.

은퇴 후에는 ‘윌마 루돌프 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이들을 돕고, 청소년육상경기대회를 지원했다.

특히 자신이 흑인여성으로서 많은 차별 들을 경험했기에, 인권운동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로마올림픽 직후 그녀의 고향인 미국 테네시주 클라크빌에서는 금메달을 축하하는 대형 퍼레이드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루돌프는 그런 행사가 백인들만을 위한 잔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흑백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는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행사 주최 측에

“흑백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라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이 이벤트는

테네시주에서 처음으로 흑백이 조화롭게 공존한 축제로 기록됐다. 이후에도 루돌프는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흑인을 차별하는 법’에 정면으로 맞서며 투쟁했다.

훗날 미국정부는 그녀의 업적들을 기리기 위해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영웅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홀로 빛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루돌프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자신의 유산은 3개의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빈민촌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윌마 루돌프 재단’이었다. 1994년 그녀가 뇌종양으로 숨을 거뒀을 때, 많은 이들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루돌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고향마을에 있는 79번 국도를 ‘윌마 루돌프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프랑스)은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루돌프 역시 육상 꿈나무들에게 “성공이란 금메달을 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라는 점을 항상 강조했다. 자칫 진부해 보이는 금언이지만,

그녀의 삶을 되짚어 보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목발 없이 걷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싸웠고,

올림픽금메달 이후에는 세상의 목발을 없애기 위해 인권운동을 벌인 루돌프.


그녀는 온 몸으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영웅이었다.



My mother taught me very early to believe

                                         icould achieve any accomplishment I wanted to.
The fist was to walk without braces.

어머니는 나에게 아주 일찍 부터 이렇게 가르치셨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그 첫 번째는 버팀대 없이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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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이나 스무 살 나이에 성공해서 전 세계의 왕이나 여왕,

또 장관이나 교황과 자리를 같이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하루 빨리 자신의 진짜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 월마 루돌프(wilma rudolph) -


                                                                                     참고자료:네이버캐스트 올림픽

                                                                                    감동영어101 영문명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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