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

누비아 유적 (Abu Simbel Temple)

여정의 길 2021. 1. 18. 19:36

UNESCO World Heritage

유네스코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유산 및 자연 유산.

세계유산은 1960년, 이집트가 아스완 하이댐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 댐이 완성되면 댐의 수몰지역 내에 있는 누비아 유적은 사라질 위기였다. 이에 유네스코는 누비아 유적을 지키기 위해 국제적인 지원을 호소했고 60개국이 여기에 호응하여 누비아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및 발굴, 기술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누비아 유적 내의 아부심벨 대 신전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옮겨졌다.
이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문화, 자연유산들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72년 11월 16일,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17회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의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조약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 조약은 1973년 미국이 최초로 비준한 이후 20개국이 비준한 1975년에 정식 발효되었다. 

유네스코의 시작점 즉 유네스코가 출범하게된 배경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세계유산 조약을 만들수 있던 이유  

시작점인 아스완 하이댐을 알아보자 

 

아스완 댐 

아스완 댐은 이집트 나일강의 아스완 시에 위치한 댐이다. 아스완 하이 댐(아랍어: Arabic: السد العالي;as-Sad al-'Ally)과 아스완 로우 댐이 크게 댐의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집트 정부의 아스완 댐 건설 목적은 나일강의 범람을 막고 관개 및 농경을 위한 전력발전이다.

나일강은 매 여름마다 매시 범람했다. 고대 때와 마찬가지로 수 천 년간 반복된 이러한 홍수는 유역의 토양을 옥토로 만드는 한편 많은 이로운 광물을 배출하면서 농경의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강 주변 거주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목화 재배지와 농경지를 보호하고 한편으로 조절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댐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아스완 댐

 

 

건설역사 

 

가장 처음 구조물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1889년 시작하였으며 그들의 공사는 1902년까지 계속됐다. 공사 기공식은 1902년 12월 10일에 열렸으며 공사에는 영국 내 저명한 건축가 다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10년대에 이르러 처음의 공사 양식이 적합치 않다는 판단이 대두하면서 한 차례 증축 공사를 하여 

댐의 높이를 높인다.

하지만 1946년 댐이 범람하면서 세 번째로 한 번 더 공사를 하게 되며 둘째 번에서 6km 정도 높이를 더 끌어올리게 된다. 기초 공사는 1952년 시작됐으며 가물 압델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로 미국과 영국이 혼란기를 틈타 자금 제공에 합의한다. 총 2억 7천만 달러를 차관 제공하기로 한 것은 나세르가 아랍 세계-이스라엘 전쟁 기미를 막는 데 협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 양국은 나세르를 정치적으로 무력화하고자 비밀 회담을 열면서 1956년 7월 차관 제공을 철회한다.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사실 공사 완공 전인 1964년 미리 수원 저장을 시작하였으며 총 수원 한계량을 1976년에 처음으로 채우게 된다. 그러나 수원 저장의 계속적인 증가는 인류학자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주위에 산재했던 고고학적 유물 때문으로 60년대 유네스코는 문화재 구조 작업에 나선다. 문화재 유적지 탐사 밑 24곳의 주요 장소가 옮겨졌다. 대표적인 곳이 아부 심벨 신전이다. 마드리드와 뉴욕 등 세계 여러 기관과 국가들은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집트 자체로는 아랍계의 오스만 아메드가 발굴 작업을 주도했으며 그의 경쟁자를 물리치며 작업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는 소련이 당시 제공한 물자에 대해 불평을 많이 했으며 소련 기술자들을 결국에 내쫓아버렸다고 전한다.

 

총 10억달러의 공사규모 이집트 전력의 총 30%에 해당하는 전력 생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인공 호수를 가진 곳이다.

 

유네스코 심볼

유네스코는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전문기구로써 사무총장 오더래 아줄레가 현재 활동 중이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위에 적힌 곳은 공식 유네스코 홈페이지

 

유네스코의 시작점 아스완 댐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스완댐을 완공하면 수장될 누비아 유적을 구출하기 위해 60개국의 도움으로 24곳의 유적지를 

이동했다고 하니 대단하다.

 

누비아 유적은 무엇이길래 세계 60개국에서 참여하고 지원했을지 궁금하다.

 

Nubian CamPaign

 

Nubian

 

Victory in Nubia

고대 유적을 지키는데 승리했다는 메시지를 당시 화면으로 볼 정도로 이들은 모든 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었고, 고고학에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기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유산 조약은 뒤늦게 출범했지만 위에서 보듯이 누비안 유적지 문제로 인해 시작되었으니 

유네스코가 아니라 누비스 코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래는 누비안 유적지에서 이동한 고고학 가치가 높은 당시 사진을 가져왔다.

 

유물을 나르고있는 인부들이다
누비안토기
누비안 스핑크스닮은 동상
누비안 사람 토기
누비안 석상
누비안 벽화

24곳으로 이동했다고 하니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가 있다.

나일강이 넘치면 축복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가둬두었고 

그로 인해 누비안 유적지에 유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보호하지만 

정작 누비안 유적지는 수장되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아래 사진이 이야기를 하는 듯 하여 가져왔다. 의미는없다.

 

유적지 여인

고대 문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포스팅 한줄평

현시대도 500년 뒤에 우리가 조선 건국을 재미있게 읽고 보듯 미래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무엇이던 재밌게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